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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 기법

예전에 공부하다 찾은 것.

준형이의 성씨와 시조에 관한 것.




홍천 용씨의 시조는 고려 고종 때 문하시중 용득의(龍得義)이다. 그는 팔만대장경을 제작하는 일을 감독, 지휘 하였으며,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에 용수사(龍遂寺)를 창건하여 불전 전수, 불교 전파을 위해 헌신하였다. 이후 후손들은 강원도 홍천(洪川)에 정착하여 홍천을 본관으로 하였다. 용(龍)씨의 연원은 미상이다.
<출처는 위키 백과>

본관은 홍천(洪川) ·광주(廣州) ·양근(楊根) ·용인(龍仁) ·파주(坡州) 등 20여 본이 전하지만 모두 홍천용씨의 분파세거지에 지나지 않는다. 시조는 고려 원종 때 문하시중을 지낸 득의(得義)이다. 그는 만년에 홍천군에 용수사(龍遂寺)를 창건하고 학서루(鶴棲樓)를 지어 우거했는데, 그의 자손이 그곳에 세거하여 홍천이 본관으로 되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문무왕때의 대아찬장(長), 고려 태조 때의 장군 길(吉) 등의 이름이 보이지만 용씨와의 관련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시조 득의의 증손 허(許)는 충혜왕때 대학박사(大學博士), 해(海)는 충정왕때 병부상서, 현손 서(緖)는 공민왕때 목사(牧使)를 지냈다. 조선에서는 서의 아들 희수(希壽)가 예조판서를 지냈는데, 태조의 잠저시(潛邸時) 교분이 두터웠으며, 공조판서를 지내고 원훈공신(元勳功臣)인 6대손 천기(天奇), 목사인 9대손 득실(得實), 후손인 공조판서 서연(瑞衍), 좌윤(左尹) 운(雲), 돈령부동지사 우구(友龜) 등이 뛰어난 인물이다. 1960년도 국세조사에서는 인구 7,181명으로 성별 순위는 258성 중 제98위였고, 1985년도 조사에서는 가구수 2,875가구로 274성 중 제99위였다.
<출처는 네이버 백과사전>


그렇다면 용씨의 시조인 용득의(龍得義)는 누구인가.

생몰년 미상. 고려 후기 문신·성씨본관 시조. 본관은 홍천(洪川)으로 홍천용씨(洪川龍氏)의 시조이다. 시어사(侍御使)를 거쳐 1241년(고려 고종 8)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이 되었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만들 때에 사업을 총괄 지휘하였다. 또한 강원도 홍천(洪川) 용수사(龍遂寺)를 창건하였다. 용수사 인근에 터를 잡고 살게 되면서 자손이 대대로 세거(世居)하였다.

출처는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http://people.aks.ac.kr/index.aks>



그 외에 네이버 백과사전을 기준으로 용씨 후손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조선 시대 문인 중 용희수란 인물이 실존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다음은 용희수란 인물에 대한 기록들이다.

1. <조선왕조실록> 태조 6년 정축(1397,홍무 30) 부분 기록
8월 경진일(1일)에 <원종 공신인 검교 전서 용희수의 빈소에 제사를 지내게 하다>

임금이 대장군(大將軍) 박자청(朴子靑)을 보내어 검교 전서(檢校典書) 용희수(龍希壽)의 빈소(殯所)에 전(奠)을 내려 주게 하였다. 희수는 원종(原從)으로 공로가 있는 사람이었다. (원문: ○庚辰朔/上遣大將軍朴子靑, 賜奠於檢校典書龍希壽殯所 希壽, 原從有勞者也)

>여기서 말하는 '원종'은 '원조공신'을 말한다. 공신에게 부여되는 일종의 사호(賜號)로 임금의 잠저(潛邸) 때부터 시종해 온 공로가 있는 자에게 부여된다.


2. <다산시문집>제 14권 발문을 보면 <용씨 묘갈명(龍氏墓碣銘)에 발함>란 제목의 글이 있다.

“오른쪽의 용씨 묘갈지(龍氏墓碣識)는, 곡산부(谷山府)에서 북쪽으로 80리쯤 되는 곳의 성조성(聖祖城) 곁에 있는 용씨묘(龍氏墓)에 세워진 것으로, 옹정(雍正 청 세종(淸世宗)의 연호) 10년(1732, 영조 8)에 새긴 것이다. 성조성은 예부터 성조(聖祖 태조(太祖))의 어가(御駕)가 머물렀던 곳이라고 전해온다. 그러나 이것은 구전(口傳)일 뿐, 글로 기록된 것이 없어서 고증할 수가 없다. 성상(聖上 정조를 가리킴) 23년 가을에 성조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증거가 없음을 근심하였다. 그러던 차에 용씨(龍氏)의 묘갈문(墓碣文)을 상(上)이 열람하게 됨으로써 성조성이 드러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용씨의 조상(祖上)은 곧 성조(聖祖)를 추종했던 고(故) 판서(判書) 용희수(龍希壽)이다. 삼가 발을 쓴다.”

위의 사진은 <跋龍氏墓碣銘>의 원문 캡쳐한 것. 원래는 다산시문집 원본에서 찾아서 원문을 칠까 했는데 귀찮아서 그냥 캡쳐로.
<모두 출처는 한국고전종합DB>





그냥 예전에 난 준형이 덕분에 용씨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다.ㅋㅋㅋㅋ
예전에 라디오스타에서 애들 막 성씨 얘기할 때 한 번 이거 찾았던 거 생각났는데, 그냥 오늘 또 생각났다ㅋㅋㅋㅋㅋㅋ
솔직히 도서관에서 족보까지도 뒤져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참았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내가 논문 쓰는 문인 족보도 못 본 참인데 무슨 준형 족보를 하는 생각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또 그거 뒤져서 뭐랄꺼옄ㅋㅋㅋㅋㅋ지금까지 찾아낸 것만해도 무쓸모한 일인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갑자기 내가 왜 이짓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넼ㅋㅋㅋ뭐 오래 걸린 일도 아니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우리 준형이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해서.....걍 직업병이라고 해두자.... 




그나저나 요즘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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